* 12회 디페(18년 5월 5일)에 낼 예정인 히어로즈 플랜 비(히플비, HPB) 일렉얀일렉 책의 샘플연재 시작합니다
* 이 글은 시오님(@Bagak_H)과의 썰핑퐁 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일부 대사와 장면은 허락을 구한 후 차용되었습니다. 해당하는 파트 명시는 본책 및 최종인포에 표기될 예정입니다. 소중한 아이디어 사용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이번 샘플에는 시오님이 썰핑퐁 중에 말씀하신 <때때로 얀의 시선을 보며, 길 잃은 개새끼도 아니고 저게 뭐야, 라며 짜증내는 일렉>의 아이디어와 문장이 변형 차용 후 삽입되어있습니다.
* 이번 샘플에는 Aimer의 육등성의 밤 가사에서 영향을 받은 문장이 포함됩니다.
* 적당한 분량이 쌓일 때까지 비정기적 연재를 거칩니다. 또한 이 샘플은 탈고 전이기 때문에 문장이나 장면 등은 가필수정될 수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 29일 오후 11시 30분, 샘플 분량을 추가했습니다
스타코어 상층부에서 내려다보는 레돌리아 시티는 오늘도 맑음. 일렉은 이제 슬슬 눈에 익어가는 도시를 잠시 동안 내려다보았다.
문제의 사건이 터진 지도 벌써 한 달 반은 지났다―고 들었다. 의료팀의 이야기로는 무슨 기억상실이라고 하던데, 거기에 부분적이고 역행 방향의 기억재생 오류니 뭐니하며 떠들었지만 역시 제가 알아들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고.
병실에서 깨어났을 때는 정말이지 마지막 기억과 뜨문뜨문 남아있는 이십대 초반의 기억이 매치가 안 돼서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큰 문제가 없었다. 날려먹은 인간관계도 다시 외우고 얼굴을 트고 같이 생활하면서 복구해냈고 듣기로는 상사들이 비밀리에 한 테스트도 통과했다고 했다.
“캡틴, 안녕~”
“으악! 아, 진짜! 바니! 놀래키지 좀 말라니까!”
“꺄하하, 그치만 반응이 재밌는걸.”
“잠시 캡틴 대리 맡고 있었을 때는 이런 성격 아니었는데 말이지. 아니, 이쪽이 원래 성격이려나?”
“그야 그렇겠죠. 바니는 일류 에이전트니까.”
“당연! 임무를 맡았으면 진지하게 해야지!”
브리핑 룸의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불쑥 눈앞에 튀어나온 바니 덕분에 일렉은 그야말로 기함을 내질렀다. 한 달 반이 지나서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건 바니의 이런 텔레포트였다. 아무래도 돌발출현에 놀라는 건 저 하나뿐인지 다른 팀원들이 눈이라도 치뜨는 건 본 기억이 없었다. 저 때문에 못해도 삼 주 간 캡틴 대리를 맡았을 때는 그나마도 이렇게 대놓고 놀려먹으려고 하진 않았는데.
그 감상을 고스란히 입에 담자 델릭 놈이 하는 대답은 또 가관이었다. 하기사 저랑 동갑 이랬는데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얘도 별로 제정신은 아니겠구나 싶었는데, 그 첫인상은 틀리지 않아서―두 번째 첫인상이긴 하지만―가끔 맥락을 못 읽는 걸 볼 때가 많았다.
다른 방향으로 말이 안 통하는 두 명 사이에서 속으로만 머리를 싸쥐고 있던 일렉을 구원한 것은 다른 두 팀원―안티와 로우였다.
비록 집합시간에 늦었지만.
“엥, 벌써 모였어?”
“그러게 마지막 디저트는 그냥 두고 가자고 그랬잖아요, 안티. 이것 봐, 우리가 꼴지라니까요?”
한 달 반 동안 제가 여기에 무사히 재정착할 수 있도록 제일 열심히 도왔던 사람들이 이들이었다. 국장님의 배려로 어색한 자기소개는 피했다지만 기억에도 없는 팀원이라는 걸 어색해하는 저를 스스럼없이 대해줬으니까.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여기―스타코어에서는 제가 기억을 잃었건 말았던 호들갑떠는 사람은 없었다. 집에서 고용인들이 깨져나갈 비스크 돌마냥 저를 대했던 걸 생각해보면, 이쪽이 훨씬 숨통이 트였다. 그래서 이곳에 발을 담근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하며 적극적으로 지금의 삶을 복구해보려 한 거였고. 실제로도 이전의 기록들을 놓고 보면 이제는 완전히 회복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뭐, 크게 늦은 것도 아니고. 브리핑, 은 기술부에서 벌써 띄웠냐――다 읽었으면 가자.”
“아이아이, 캡틴~”
*
임무는 무사히 끝냈다. 시끄럽고 정신이 없긴 했지만 오늘도 별 탈 없이. 오히려 저에게 가장 큰 시련은 지금이었다. 국장실 앞에서 괜히 서성거리기를 몇 분. 국장실에 보고만 하면 오늘 일과는 종료였지만, 문을 열기가 영 내키지 않았다. 이유는 이 방의 주인 때문이었다.
기억을 뒤져보면 좋게 쳐야 예닐곱 번쯤 얼굴을 봤을, 저를 스카우트해왔다던 국장은 눈을 마주치고 있는 동안은 잠잠하다가도 대화를 끝내고 몸을 트는 그 순간마다 축축한 시선으로 젖어들었다. 본인은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히어로즈가 국장 직속 팀이긴 해도 상사는 상사라서 이런 걸 티 낼 수도 없고, 무엇보다 그런 면상을 떠올릴 때마다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올라 CCTV로 봤던 과거의 저 마냥 험한 말을 마구 내뱉을 것 같은 충동에 휩싸였다.
‘미뤄봤자 내 퇴근만 늦어지지. 눈 딱 감고―.’
“들어오게, 캡틴.”
“!?!!”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막 노크를 하려는 순간 문이 먼저 열렸다. 국장이 손수 문을 열고 들여보내는 사태라니. 스타코어는 상하체제가 빡세게 잡혀있지는 않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스타체이서를 무너뜨린 사람이고 레돌리아 시티의 실질적인 법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이곳의 최고책임자인데.
“아니, 이럴 필요는 없었는데요. 괜히 움직이게 해서―.”
“내 직속 팀의 리더가 찾아온 건데 맨발로 달려와도 괜찮지 않나?”
“거 빈말로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마시죠. 보통 부하 직원한테 그러면 부담스러워서 달아날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