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발행] 괴도조커 AD <반흔>
* 1쇄 / 디페스타 11회 day1
* 유료발행 / 포스타입(새 창)
반흔
- A5 / 편집 후 36p
- 5,000원 +3,500원(통판 시)
- 동거 중인 AD에게 다시금 4기 11화(50화)의 저격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이야기
- 트라우마 및 공황상태를 묘사하는 장면이 포함됩니다
- 헤드캐논 다수 포함(추가될 수 있습니다)
괴도들 & D님 모두 성인
A와 D는 사귀고 있고 동거 중
두 사람의 과거는 상당 수 날조
두근, 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서 바짝 울려댔다. 깜깜한 밤하늘, 눈앞에 가득 깔려있는 야경, 투다다다 돌고 있는 헬리콥터, 저를 향해 빠꼼이 악의를 드러낸 까만 총구 그리고 저만치에서 아랫입술을 깨물고 달려오는 네가 있다.
이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전부 알고 있었다.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손발은 차라리 저 총구를 미쁘게 여기고 있고 아마도 저의 그런 표정에 힘입어 스파이더 에이스는 더더욱 달음박질에 박차를 가한다. 헬기의 시끄러움에 묻힐 거라 생각하는 건지 소음기도 없이 타앙―하고 허공을 찢는 총성이 거세다. 몸이 나뒹군다. 아픔 대신 느껴지는 무게가 덮쳐누른다. 눈을 뜨니 하늘이 보이고, 이어 근거리에서 네가 웃는다. 꿈으로 되돌려 보고나서야 네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게 선명하다.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네가 무너진다.
힘없이, 털썩―.
“헉.”
D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악몽에서 깨어났다. 좀 전이 꿈이라는 자각은 어슴푸레한 방 안을 확인하고서야 선명하게 다가왔다. 아니, 그건 엄밀하게 말하면 가능성의 일부였다. 겨우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피하게 된 미래 중 하나. 어린 아이들이 잠자리에서 칭얼댈 수준의 악몽이 아니었다. 이래봬도 부모를 일찍 여의고서 바로 사업전선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가능성을 점치는 건 잘 하는 편이었다. 현실은 현실이다. 지금 얻은 행복은 그저 그 날의 제가 지독하게 운이 좋아서 흘러들어온 결과일 뿐. 비슷한 일이 반복될 때 또 운이 좋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손끝이 잘게 떨었다. 파스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숨이 차가웠다. 양 손에 얼굴을 묻었다. 이다음에는 아마도―.
*
일상은 평범하다. 이른 새벽의 으깨진 흔적 따위는 하나도 없이 말끔하게 덮어둔 D는 간단한 아침이 차려져 있는 식탁을 흘끔대며 근 십여 년 간 꺼낼 일이 없었던 문장을 끌어냈다.
“...좋은 아침.”
“아, 일어나셨어요?”
이제 얼추 한 달이 다 되어가는 풍경이지만 영 낯선 모습에 어깨부터 덜그럭 굳었다. 계란 옷 끄트머리가 누렇게 탄 프렌치토스트. 설탕과 시나몬이 어우러진 향. 웨지wedge형으로 투박하게 깎은 사과. 입맛이 없다고 반들반들하게 씻은 사과만 덜렁 들고 회사로 향했던 지난 시간과는 영 딴판인, 누군가가 함께 하는 아침.
때때로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진짜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울었고, 이제는 어떻게든 표정 수습은 할 만큼은 됐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했던 에이스는 이제는 그런 기색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면 못 본 척하면서도 키들키들 웃었다.
“오늘 아침은 우유와 주스 중에서 어떤 거?”
“오늘은 둘 다 아니야.”
“음, 그러면 커피 두 잔이네요. 커피빈 더 넣고 올 게요.”
“...그래.”
겨우 한 달 만에 에이스는 제 취향을 거진 다 파악해서 오래 데리고 있던―해고한 지는 꽤 됐다―비서보다도 저를 더 잘 알았다. 한 박자 늦게 나온 대답도 알아들었다는 듯 뒷모습을 보인 채로 끄덕이는 뒤통수가 보였다. 뒷모습을 보는 것을 그닥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멈춰있던 시간이 안온하게 흐르고 있다고, 어깨와 등에서 스르륵 힘이 빠지는 그 순간에―.
머그잔이 챙하며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이고, 깨먹었다. D님 오지 마세요. 파편 튀었을지도 모르니까 거기서 가만히. 어제 신문은 써도 되죠?”
“…….”
하얗고 뾰족한, 뼛조각처럼 생긴 머그컵 파편이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뼛조각. 죽음. 섬광처럼 악몽이―하나의 선명한 가능성이 뇌리를 점령했다. 네가 죽을 수도 있었다. 나 때문에. 거기에서 하얀 뼈를 드러내놓고서. 그렇게 차갑게. 파편. 부서져있는. 부재.
잘그락 잘그락 유리조각이 저희끼리 부닥치는 소리가 멀겋게 멀리서 들렸다. 시야가 거무죽죽하게 물들었다. 삐죽하게 찔러 들어오는 희뿌연 네온사인과 귀청을 새까맣게 메워대는 헬기소리. 가능성이 살아 돌아오고 있었다. 너의 죽음이 무엇보다도 가까워서,
“―님, D님!”
갑자기 소스라칠 정도로 선명한 에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D는 제가 숨을 쉬지 않고 몸을 옹송그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긴장과 공포로 꽉 졸렸던 기도가 등을 토닥이는 손에 풀려 공기가 단숨에 밀려들어왔다. 한참 쿨럭거리는 저를 다독이는 손에 눈물이 났다.
“천천히 숨 들이쉬고, 내쉬어요. 네, 그렇게.”
옷자락을 움켰다. 잃는 것은 그 때만으로 족했다. 용기를 못 내 잡지 못한 것, 어리숙해서 쥐는 법을 몰라 놓쳐버린 것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이 산더미였고 이후로는 가진 것도 없으면서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는데 그 폐허 위로 또다시 너를 쌓을 수는 없노라고. 차마 문장이 되지 못한 집념이 손끝에 실렸다, 가 흩어졌다.
D는 제가 겁쟁이라는 걸 이런 순간마다 절감하고는 했다. 고쳐지기는 하련지. 마른 웃음마저 새어나왔다.
“아침부터 미안하다.”
“에이 뭘요. 좀 놀란 건 맞지만. 물 가져다 드려요?”
“아니. 됐어. 괜찮아.”
괜찮아. 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몇 번을 되뇐 한 마디를 에이스가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것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냥 간단한 지각 해프닝 정도로 그쳤으면 좋았을 테지만, D는 결국 저의 인생이 늘 그랬듯 불길한 사건의 끄트머리는 결국에는 거대한 몸체를 내보이며 저를 머리부터 으적으적 씹어 삼키리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 그랬으므로.
*
마지막 조서를 제출하고서야 D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제가 벌인 실수는 법적으로는 마무리가 지어진 셈이다. 결과적으로 회사에도 저 개인에게도 큰 타격은 없었다. 데빌팡을 세우면서 각오한 점이라 미리 대비해둔 덕을 톡톡히 봤다.
데빌팡은 사적 재산으로 운용한 단체였고 그 와중에 제가 닥터 네오에게 이용당한 정황도, 그 손에 살해당할 뻔한 전력도 증인을 통해서 전해져서 참작된 점이 많았다. 덤으로 지금까지 해온 봉사활동과 자선사업도 한몫했고. 봉사활동은 부모의 영향으로 습관적으로 해왔던 거지만 이렇게 작용해버리니 어쩐지 부모님의 비호인가 하는 감상마저도 들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바로 회사로 가나요?”
상념을 깬 건 이제 대외적으로 저의 제 1비서이고 보디가드이고 운전기사인 애인이었다. 기자들이 몰려있어서 차는 미리 다른 데로 빼두었다고 윙크하는 에이스 덕에 피들하게나마 웃음이 샜다. 제가 살인청부업자의 타겟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준 게 에이스였고 지금 이 자리에 별 탈 없이 서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내 사적인 일정이 끝난 거지 회사 일이 끝난 건 아니니까.”
“네, 그러면 회사까지 모시겠습니다.”
예전이라면 제 앞이나 뒤를 지켰을 에이스가 곁에서 나란히 걷게 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사실은 이렇게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과도 같았다. 애시당초 저는 데빌팡을 만들어 킹과 다른 괴도를 찾아내려고 맘먹은 순간부터 이대로 삶을 마무리 지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움직였으니까.
지금은, 새로 출발해도 괜찮을 거라는 마음이 일었다. 한동안 보복성 세무조사 같은 것에 시달리거나 삼류 가쉽지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될 테지만 결국 잠잠해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뭣도 모를 어린 시절 갑작스런 부모의 죽음으로 회사를 물려받았을 때가 그랬고. 게다가 이번에는 혼자 감내할 필요도 없어서 무슨 일이 닥쳐와도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혹시라도 있을 기자를 의식해서 신은 구두가 따각따각 소리를 냈다. 건물 지하, 뒤편으로 빠지는 주차장까지 뭘 어떻게 한 건지 분명 하나쯤은 있으리라 생각한 파파라치가 하나도 없었다. 시선의 집중포화에 이골이 났다고 자신했지만 신경 끄트머리가 가닥가닥 풀려서 어깨 힘이 빠지는 걸로 봐서는 바싹 긴장하고 있었던 게 틀림이 없었다. 이제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인지. 어쩐지 우스워서 에이스를 막 쳐다보고 입을 열려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